최근에 나 자신을 무척이나 괴롭히는 생각들이 있어서 참 힘들다.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왜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보수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까? 라는것이다. 배불리 먹고 등따스 하니까 이런 잡생각들이 드는것일수도 있겠다. 북한의 형제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다 보니 머리속에 어떻게 하면 밥 한술이라도 먹을수 있을까 하는 생각 외에는 할수가 없다고 하는데.
미국 대통령 선거를 보면 번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슈가 있다. 바로 낙태와 동성애, 그리고 최근에 줄기세포 관련 논쟁들이다. 그리고 대부분 그리스도인들, 특히 남부지역의 보수적인 기독교세력은 이런 이슈에 대한 후보들의 관점을 투표의 중요한 잣대라고 판단을 하고 있는것 같다. 그러나 올해는 워낙 경제가 어렵다보니 이런 이슈들은 별로 힘을 쓰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아마 그래서 공화당이 정권을 잃은것이고. 도덕적으로 세상을 판단하기를 원하는 보수적인 기독교인들도 발등에 떨어진 불 앞에서는 도덕보다는 밥그릇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다.
또 하나 의문스러운것은 도대체 언제부터 미국의 기독교가 보수화가 되어 있었을까? 하는것이다. 알다싶이 미국은 청교도들의 정신으로 세워진 나라다. 그 청교도들은 어떠한 사람들이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 당시 보수세력인 천주교 등의 관점에서는 분명히 청교도들은 진보적이다 못해 이단으로까지 몰렸던것 같은데 말이다. 요즘 다시 유행하는 말을 빌리면 좌빨보다도 더 쳐죽인 놈들이 아니었을까?
그럼 예수님 시대에는 어떠했을까? 목사님들로 하여금 자주 목청을 높이게 하는 그 당시 집단이 바로 바리새인들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바리새인들에게는 율법이라는 무기가 있었고, 목사님들 얘기로는 그 율법이 바로 바리새인들의 기득권을 보장하여 주는 강력한 무기였다고 한다. 결국엔 율법으로 중무장한 바리새인들이 율법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육신에 대못을 박아버린 것이 아니었던가? 예수님 생애를 보면 예수님은 참으로 율법을 많이 어기셨던거 같다. 물론 바리새인들의 관점에서다. 그리고 요즘 보수적인 관점으로 보면 예수님은 거기서 한술 더 뜨셔서 빨갱이적 기질까지 많이 가지셨던거 같다. 믿지 못하겠으면 거리로 나가서 부자들한테 한번 말을 걸어보자. 당신이 가진 전부의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당신은 예수님을 따르시오. 라고 말이다. 아마 한국신문에서는 희대의 빨갱이 하나 추가요 하고 대문짝만하게 정치면 톱을 장식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보수적인 기독교세력을 등에 업은 매케인 아저씨가 나와서 이러지 않을까 싶다. 이 사람은 부의 재분배를 주장하는 오바마같은 사회주의 분자다 라고.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초대교회 때도 우리는 비슷한 이야기를 본다. 신도들이 각자 재산을 다 팔아서 사도들앞에 갖다놓고 서로 나누어서 쓰니 부족함이 없었다고 한다. 물론 섬뜩한 얘기도 있다. 거기서 자기 재산을 일부 숨긴 부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 말이다. 마르크스는 아마 거기서 공산주의 사상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물론 하나님 믿는 자들도 이루지 못한 세상을 하나님 없이 하려고 했다는 부분에서는 실패할수밖에 없었지만,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오늘날에는 보수적인 기독교인들로 부터는 부의 재분배를 주장하는 빨갱이로 불리는것이다.
요즘 미국전역에서는 동성애 결혼 반대를 둘러싸고 보수세력, 특히 기독교와 자유주의자들이 피터지게 싸우고 있다. 돈도 수천만달러씩 쏟아가면서. 내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동성애자나 지지자로 몰릴것 같아서 하는 얘긴데 나는 동성애를 찬성하는 자는 아니다. 다만 하고 싶은 얘기는 구제하고 선교하는 일보다 더 열심을 부리는것 같아서 씁쓸할 따름이다. 마지막날에 하늘이 심판할 일들을 미리 심판을 하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을 사람들로 보인다. 물론 법으로 금지한다고 동성애가 없어진다고 믿는 단순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수님 전에도 있었고 오늘도 있었으니까. 대부분 기독교인들 같았으면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셨을쩍에 이미 법을 고치고 도덕기준을 세우고 일일이 다 해주지 않으셨을까 싶다. 그리고 새로운 도덕기준을 십계명으로 돌판에 새겨주셨을지도 싶다. 우리가 감당못할 사랑만을 주고 가셔서 믿는 자들이 이렇게 방황하는지도 모르겠다.
말이 길어지는데 내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이거다. 그러면 언제부터 기독교인들은 도덕과 이념을 실제적인 삶의 기준으로 삼았을까?다. 사도 바울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라고 했는데 요즘은 어떻게 변했을까? 율법도 아니고 예수님의 가르침도 아니고 제일은 도덕이요 이념이다 라고 바뀐것은 아닐까?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일들이 많아서 그냥 적어보는 글이다. 내 신앙생활에도 많이 영향을 주고 있기때문에 끄적거려 보면 좀 속이 풀리려나 싶다.










나도 살짝 한마디...
실은 선배님이 아주 답을 잘 알고 있는듯 싶은데..걍 느끼는거라면 진리안에서의 자유라는 의미를 체험해보시지 못한거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진리도 이미 알고 계시고 지키는게 어려운건 압니다.
하지만 한번 두번 마음 굳히시고 정말 진리만을 따라가는 연습을 해보시죠. 자유롭고 기쁩니다.구속이나 보수적이나 이런 느낌보다는 자신을 꺾고 정말 주님의 진리안에서만이 누릴수 있는 자유함과 기쁨.
세상은 보수적이니 그 사람들두 맘의 고통이 있어서 어쩔수 없이 글케 됐대니 하면서 연민을 일으켜서 하나님의 진리가 아닌것들, 하나님이 안된다고 한것들을 정당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속이는 영인 사탄의 행위가 아닐가요?
흔들리지 맙시다..마음의 중심을 다지고 또 다지고 굳히고 또 굳힙시다.
어느 누가 어떻게 이용을 하던 어떡하던 나중에 심판이 있을겁니다. 어항에 있는 물고기가 사람이 눈을 마주쳐주지 않으면 사람이 자신을 보고있는지도 모르고 지 동포를 잡아먹는 일을 서슴없이 하듯이.. 우리 또한 그러지 않을가요? 보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멋대로 ...
시대가 어케 변하든 찬양처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영원하십니다. 창세기때부터 죽 읽어보심 태초부터 사실은 말씀이 있고 그대로 살았었는데 나중에 점점 타락하고 교만해져서 하나님 말슴 거역하고 살았던것 뿐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선배님이 말씀하시는 소위 <<기독교적인 도덕과 이념>>은 태초부터 삶에 적용하고 생활했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잘 읽어보면 쭉 구슬이 줄에 의해 꿰어져 일렬이 되듯이 다 이어져잇으며 어느 사건에든지 하나님의 말씀과 기준이 없는데가 없다고 봅니다.

세상은 변할것과 변화되지 말아야 할것이 있다는 것에 찬성합니다.
변화되지 말아야 할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인간의 나약함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드네요.
우린 하루하루의 삶이 악과의 싸움인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성경에 변하지 말라는 것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나 하나님의 너의 주이시다.>
성경공부 시작할때 첫 시간에 배웠던것이 하나님의 사역은 <나>를 통하여 이루어 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나>에게 계시를 주시고 나의 행동으로 그것을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보수를 반대 하는 것은 성경에 이렇게 씌어져 있으니 하지 말라고 웨치지만 말란 것입니다.동성애는 성경에서 하지 말라고 한것이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로만 웨치지 말란 것입니다.
낙태를 막기위해 - 사전, 사후 피임을 널리 선전하고 보편화 시키고
동성애를 막기위해 약물을 개발하여 잘못된 호르몬 분비를 억제 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문둥병 환자에게 안수 하듯이, 돌팔매 맞는 창녀를 구원하듯이 말로 말고 발로 뛰세요.
안수로 병을 치료하고 말 한마디로 물을 포도주로 바꿀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기 때문이고 하나님은 그 자체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도 발로 뛰는 하나님이라는 것이죠.
윤리와 도덕이 변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는데 가장 쉽게 변하는 것이 이 두가지 입니다. 동성동본은 결혼 못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윤리였다면 지금은 아닙니다.상놈이 양반을 보면 길을 비키는 것이 도덕이였다면 지금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는 어디에도 도덕에 대해 정의 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