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랫만에 이렇듯 길고 또한 정성들여 작성한 글을 보고, 차마 넘어가지 못하고 답변을 드립니다. 답변이 너무 길어서 코멘트로 남기지 않고 새글로 올립니다.
지창덕씨의 의문과 질문을 다시 정리한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왜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보수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까
2) 낙태와 동성애문제
3) 언제부터 기독교인들이 도덕과 이념을 삶의 원칙으로 삶았을까
이제부터 이런 의문에 대한 저의 생각에 대해 적으렵니다.
1) 왜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보수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까
이 문제를 두가지 측면으로부터 분석하여야 합니다. 먼저는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는 신실한 기독교인이 맞는지를 확인하여야 합니다. 아시다싶이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모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신앙란에 기독교인이라 썼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듯이, 귀하가 보는 “대부분의 기독교인”(아마도 정부의 통계에 근거한 것이겠죠)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소부분의 기독교인”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그리스도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소위 “보수적”이라는 단어에 대한 귀하의 정의를 체크하여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보수적”과 “진보적”은 상대적이고, 그 기준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그 기준점에 가까운 것을 “보수적”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만약 예수님이 오시기전의 바리새인들의 도덕을 기준으로 삼으면 예수님은 “진보적”이지만, “율법”을 기준으로 삼으면 예수님은 “보수적”으로 됩니다(Note: 예수님은 율법을 페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려 오셨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지킨것은 변형된/자기 뜻에 맞춰 고친 율법이었지 참 율법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적인 개념으로서의 소위 “보수적”과 “진보적”은 최근 200~300년사이에 나타난 것이고 그 기준은 그 전의 세대였고, 그 전 세대와 가까우면 “보수적”으로 하고 그 전의 세대의 정치이념과 많이 다르면 “진보적”이라고 하는것 같은데(틀렸다면 correct해주시를 바랍니다), 율법을 기준으로 삼을 때,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다 기준과 아주 멀리 떨어져,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지 모릅니다. “왜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보수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까”는 의문 어쩌면 원망일지도 모르는 생각 뒤에는 “진보적”은 “보수적”보다 좋다는, 새로운 것이 더 낫다는 선입견이 깔려있습니다. 어떤 것을 “보수(保守)”하는 가에 따라 “진보적”인 것이 좋을 수 도 나쁜 것을 수도 있습니다
2) 낙태와 동성애문제
일단 낙태문제를 봅시다. 저는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왜서 한 영혼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지를 잘 몰랐습니다. 며칠전에 어떤 책에서 이런 말을 보았습니다. 영혼은 영원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다른 것(국가까지도)들은 다 없어지게 됩니다. 만약 한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하면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을 받게 됩니다(영혼이란 사라지지 않기때문에). 그런 이유때문에 생명이란 소중한 것이고 우리가 함부로 인간을 죽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다른 살인은 미리 예측할 수 없지만, 낙태는 미리 예측할 수 있는것이고, 적어도 의사들은 이것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성애관련 문제를 봅시다. 성경에서 이런 말은 본 기억이 납니다(아마도 구약에 있을 것입니다). 다른 죄는 해가 타인에게 가지만, 동성애는 해가 자신에게 돌아간다고. 남에게 해를 당하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해를 당하는 것을 우리가 혹시라도 법으로 막을 수 있지 않는 가는 생각에 동성애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이 아닐까요?
성경의 기준으로 이세상의 법을 고치려면 어디 낙태와 동성애문제만이겠습니까, 제1조목으로 “하나님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제2조목은 “너를 위하여 그 어떤 우상도 만들지 말지어다”, 제3조목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etc., 만약 이런 내용도 법으로 제안하고 바꿀 수 있다면, 그 소위 “진보적”들로부터의 반대가 얼마가 강력할 지 가히 상상이 가능하겠죠? 낙태와 동성애문제가 그나마 “이 세상”의 반대가 상대적으로 적은 부분이라서 그리스도인들이 법으로 제한하려고 시도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 두가지만을 강력하게 반대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처지가 불쌍합니다(사실은 반대할 것이 아주 많은데).
3) 언제부터 기독교인들이 도덕과 이념을 삶의 원칙으로 삶았을까
도덕은 “성경의 가르침의 부분집합” + “이 세상의 일부 규칙”으로 이루어졌는바, “성경의 가르침”보다 요구가 훨씬 낮습니다.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 도덕은 항상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이 세상의 일부 규칙”은 아예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도덕과 하나님의 가르침사이에는 항상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기독교인이 도덕만이라도 잘 지킨다면 이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곳이였을 겁니다. 사실은 기독교인들은(비기도교인은 더 말할나위가 없고) 도덕과 이념을 삶의 원칙으로 삼은 적조차도 없다는 답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원칙이란 매일매일의 삶에서 항상 지켜야 하는 것이라면 변덕스러운 인간이 바뀌지 않는 원칙을 가져본적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역사적으로 볼 때 “바리새인”들은 항상 있었습니다. 단지 예수님이 오셨을 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바리새인”을 따르는 소위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단지 예수님이 오셨을 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있습니다.
저의 미국인 보스가 저보고 왜서 예수님이 요즘 세상에 태어나지 않고 2000여년전에 태어났는가, 만약 지금 이 땅에 계신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게 아닌가? 그 때 저는 이렇게 반문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이 땅에 계신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분을 따를까? 당신은 믿을건가?” 아마도,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다면 다들 포샵처리라고 할 것이고, 누군가 그이가 행하신 기적을 글로 쓴다면, 돈을 받고 쓴 “거짓 보도”라고 하겠지요. 우리는 2000여년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유대인과 똑같은 죄인들입니다. 항상 죄를 짓고 삽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다를 게 없습니다, 똑같이 죄인들입니다. 다른 죄인들의 죄를 보고 판단하기보다는 나 자신의 죄를 줄이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So, 기독교인은 태생적으로 죄인입니다.


To: 강지영님,
답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심각한 죄"부분은 아무래도 어제 너무 늦게 작성하다나시,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수정하였는데, 그 part의 요점은 1) "영혼은 영원하고, 그 영혼을 가진 생명은 소중하고, 인간이 인간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된다 " 2) "낙태와 동성애만(Note:만을 넣고 안넣고가 문장의 뜻에 큰 영향을 줍니다,여기에는 있습니다)을 심각한 죄로 인정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인간이 보기에 아무리 작은 죄라도 하나님의 표준으로 볼 때 심각한 죄이고, 우리가 스스로 죄들에 랭킹을 만드는 것은 도토리 키재기 아닐까요?) 그 Part의 첫 부분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낙태도 살인이고 동시에 도덕에도 위배됩니다(이걱이 도덕적문제라고 해서 살인이 아닌 것은 아니죠, )
제가 특별히 님이 말하신 "펠라기우스"라는 용어에 대해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그 주된 내용은 구원론과 은총론이라 하는데 제가 어느 부분에서 이런 내용을 언급했는지 가르켜 주시기 바랍니다. (전 http://sgti.kehc.org/data/person/kang/2.htm 여기에서 정의를 찾아보았는데, 여기의 설명이 맞는지 확인해주실래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