烟台행 (하) - 해답

아침에 일어나 카텐을 활짝 열었을 때, 창밖은 어느새 간밤에 몰래 내린 눈으로 하얀 세상이
되어버렸다. ^^ 대련에서 구경 못하던 눈을 여기서 이렇게 보게 되다니, 이건 참으로 놀라운
선물이었다.

12월 5일(토), 오늘은 계획대로 해변가로 가서 자신의 답을 찾기로 했다. 바다가 나에게
답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바다가에서 그 파도를 바라보면서 바다처럼 마음을 활짝
열 때, 하늘에서 답이 내려와 마음속에 담겨지리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보아하니 간밤에
내렸던 눈으로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고 한다. 다행히도 날씨만은 개인 날씨여서 얼어죽을
근심은 필요 없었다. 영혼에 수술칼을 대는 그 아픔에 비기면, 차가운 바람에 살이 오려지는
고통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해빛이 넘치는 해안선을 따라 차가운 바닷바람을 마시면서 나는 부단히 마음속의 생각들을 비워두는
작업을 진행했다. 마음속에서 생각이 떠오르는족족 꺼내어 바람에 날려보내버리거나 소화시켰다.
또 한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안한채 무심히 파도만 바라보기도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잠잠하던 파도가
오늘따라 1메터에서 2메터의 파도로 해안선을 향해 세차게 덮쳐들었다. 가끔씩 길 옆 제방뚝에 부닫쳐
사람높이만큼 물줄기를 뿜기도 했다.

제방뚝에 부닫쳐 돌아가는 파도와, 저 멀리에서 덮쳐오는 파도가 맞부닺쳐 중도에서 높은 물기둥을
만들었다가 와르르 무너지고, 그 파도가 또 제방뚝에 덮쳐들었다가 돌아가면서 다음 파도와 부딛쳐
물기둥을 이루고.. 내가 지켜보는 동안 파도는 쉼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어찌보면 저건 내
마음속의 파동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은가 싶었다. 화창하고 찬란해 보이는 해빛아래 여러가지
생각들이 같지 않은 방향으로 거세차게 부딛쳐 깨어져 수많은 물방울 조각들을 남겼다가 다시
뭉쳐 출렁이며 세차게 부딛치고... 과연 누가 저 포효하는 바다를 잠잠하게 하며, 저 출렁이는 생각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걸가?

그렇지.. 모든것이 파동이다. 이 세상 모든 사물과 사건, 시간과 생각 마저도. 물이 파도가 되어
서로 부닫치는 것은 물이 부닫치는것이 아니라, 그 속에 에너지가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파도의
형태로 저렇게 출렁이며 부서지고 뭉치고 반복하지만 물은 여전히 물이다. 그 속에 에너지와 파동이
있기 때문에 저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나는?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파도는
무엇때문이며, 마음속의 파도가 가라 앉아 잠잠해질 때 그 진실한 나는 과연 누구일가? 어느날
부자가 되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나는 누구이고, 혹시 어느날 거지가 되어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자가 된다면 나는 누구일 것일가?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건이나 명예가 나인가?
돈도 잃고 건강도 잃고 친구도 잃고 모든것을 잃었다면 내가 없어지는 걸가? 나는 저 우주의 파동과
동일한 에너지이며, 사라지지도 않고 소멸되지도 않으며 칭찬한다고 해서 고상해지지 않고
소유한것이 없다고 해서 비천해지지도 않으며, 있는 그대로 사랑스럽고 자유롭고 항상 변화하는
존재가 아닌가?

세상은 우리에게 우리가 아닌 것들을 우리라고 주장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집을 내것이라 정의짓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명예, 외모, 심지어 생각까지도 내것이라고 정의짓는다. 그리고 원래는 동등한
존재들을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의 많고 적음으로 등수를 매긴다. 하지만, 태양은 무한한 빛과
따스함을 우리에게 주면서 돈을 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지구는 헤아릴 수 없는 육지와 양식을
주면서도 세금을 내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본체가 아닌 환상에 너무 빠져버린체 그것을
자신으로 착각하고 그것을 잡으려고 진정한 자신은 잃어가고 있는게 아닌가?

... ...

생각은 많았지만 바닷가를 다 걷는 동안 정작 얻고자 했던 답은 얻지 못했다. 과연 교회는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과연 내가 진리라고 믿는 것은 견지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두가지는 과연
모순되는 것이냐 아니면 뭔가 해결책이 있는것이냐?...

그러다 점심시간이 되어, 부두부근에서 호텔을 잡고, 점심 먹으러 나갔다. 아무 목적 없이
호텔 부근의 골목길을 다니다가 길거리에서 파는 훈둔 한그릇 먹고, 계혹 골목길을 찾아 걸어
다녔다. 만약 내절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면, 아마 그때의 나의 모습은 길잃은
자의 초라한 모습이었으리라. 사실 나는 길을 잃은게 아니라 영혼을 잃었으니깐. 혹시나 어느
골목에 가면 우연히 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줄 알고, 머리 떨어진 파리처럼 골목만 보이면
좇아가는 그런 모습이었으리라..

도처에서 날품팔이 하는 사람들과, 길거리에서 자그마한 눅거리 수공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영업하는지 파산되었는지 알수가 없는 골등품 가게, 아릿다운
여자들이 여름옷차림 하고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손짓하는 이상한 가게, 은행앞에 모여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광고지를 나누어 주는 사람들, 간혹가다가 눈에 띄이는 길가에 세워진 고급승용차,
그리고 어느 거울앞에서 바라본 눈빛이 비어있는 나 자신의 모습, 저 멀리 아츨하게 높이 솟아 있는
건물... ...

이 모든것은 모두 하나일 것이다. 이 모든것은 분명히 뭔가로 연결이 되어 있을것이다... 내가 본
모든 것들은 모두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생각의 모순, 믿음의 갈등, 그 모든것을 연걸하는 그 어떤것 ...
뭔가가 있을것이다...

아쉽게도 내가 찾는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믿고 있었다.
꼭 나는 답을 얻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 답은 정말로 어느 순간에 나에게로 다가왔다.

호텔에 돌아와서 나는 들고간 영혼에 관련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다가 문뜩 조용히
생각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책을 옆에다 엎어놓고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한동안
잡음으로 어지럽던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고 조용해지면서 천천히 어떤 파동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파동은 기쁨과 감사와 행복으로 이어졌고, 그 속에서 나는 한 단어를 느끼게 되었다.
그건 바로 - "사랑"이었다.

그렇다, 바로 그거였다. 이 세상을 담담하게 바라 볼 수 있는 것,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변화시킬 수 있는것, 부자가 되던 가난한 자가 되던 고귀한 자가 되던 비천한 자가 되던
변함없이 지켜갈 수 있는 것,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가 한평생 견지할 수 있고, 그것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이고 흥분하며 힘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나를 흥분하게 하고, 나를 짜릿하게 만들며, 나를 미치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은 사랑을 느끼고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  교회를 다니던 안 다니던, 성경을 읽던 안 읽던 더 이상 중요하지가
않았다. 착오를 범하고 상처를 주고 아픔을 겪더라도 괜찮다. 매 순간속에서 사랑을 의식하며
사랑으로 살아가기만을 노력하리라. 돈이 없고 집이 없고 결혼도 못하고 비천한자가 되더라도
괜찮다, 오직 사랑으로 살아가리라...

문뜩 이전에 컴퓨터의 바탕화면으로 놓았다가 잃어버린 구절이 생각이 났다. 바로 마더
테레사의 유명한 구절이었다.

“It is not how much you do, but how much love you put into doing it.” -Mother Teresa

전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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