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

여행길은 진실한 자신의 심령을 찾는 길이기도 했다. 낯선 고장에서의 예약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만남, 같지 않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과의 대화, 우연한 사건들이 가져다
준 감동과 느낌, 모든 것이 하나의 짜여진 화폭으로 연결되어 심령의 메세지를 전달해 준다.

생명은 오직 한번 뿐이며, 사람의 몸이 죽고 나면 영혼마저도 사라진다는 진화론을 "진리"로
믿었을 때, 기독교의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사람에게 영생이 존재한다는 이론은 나에게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로만 들렸었다. 하지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과 몸이 죽은 후에도 영혼은 살아있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직 예수님만이 인류 영혼의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배웠으며, 자신과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열심히 믿고 따르며 나누어야 하는 것을 배웠다.

나는 이미 한번 내가 "진리"(진화론)라고 믿어왔던 것을 부인했었고, 그로 인하여 새로운
"진리"(기독교)를 받들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원치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아쉽게도 같은 변화는 내가 새롭게 받아들인 "진리"(기독교)에게도 똑같이 발생하였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진리"라고 믿었던 기독교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 아닐 수도 있으며, 기독교 또한 여러 종교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문장을 여기에다 적기에는 상당히 큰 고통과 비난이 동반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생명을 마치는 한이 있더라도 꼭 알고 싶을 정도로 중요하게 느껴지는 영역이라,
감히 솔직하게 "진리"에 대한 자신의 방황과 고민과 느낌을 적어보기로 결정했다.

운남성 곤명시에서의 3박 4일 여행중, 민족촌에서 여러가지 종교를 가지고 있는 민족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으며, 그들과의 대화속에서 나는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라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불교, 이슬람교, 서장불교, 기독교, 도교, 자연교 ... 이슬람교를
믿는 회족 청년이 나에게 해석해준 "진리"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이 세상에 알라신 밖에는
다른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얼마나 익숙한 구절인가? 그리고 도교의 옷차림을 한 어떤
중년이 알려준 말도 기억이 난다: "다른 교는 모두 외국에서 들어왔지만, 도교만은 유일하게
중국에서 탄생한 교다". 같은 지역에 서로 이웃으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어이하여
"진리"를 놓고 이렇게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는 것일가?

나는 다시한번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을 꺼내놓고 살펴보기 시작했다. 만약 그때
"진리"라고 생각했던 진화론을 의심하지 않았더라면 그 후에 "진리"라고 생각했던 기독교를
접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같은 도리로서, 지금 내가 믿고 있는 "진리"에 대해 감히 의심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지 않는다면, 과연 나는 자신이 진리를 찾는 진지한 자세라고 할 수 있을가?

불교 경전 "반야심경"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고통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고통을 없애는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고통이라는 것은 "나"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나" 라는
것이 없어지면 당연히 "나의 것"도 없게 되고, 따라서 "나의 느낌"인 희.노.애.락도 없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태가 되면 그 느낌을 구하거나 피하는 방법도 필요가 없게 되니깐.

"진리"라는 것에 대한 현재의 느낌을 적어보면: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진리를 찾는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해야 할것 같다. 존재하는 모든것이 진리이며, 그렇기 때문에
진리가 아닌것이 없으므로 진리도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진리를 찾는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할가?

한차례의 여행이 수많은 사색들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정리를 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러고 보면 이 문장도 별 의미가 없는 문장인것
같다. 왜? 이 세상의 모든 것 - 진리를 포함해서 의미가 없음을 다루는 글이니깐. 솔로몬의
전도서에 유명한 구절이 생각난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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